[번역] The future of human centered design – Firm Follows Firm

IDEO의 디자이너인 Nathan Waterhouse의 블로그인 Firm Follows Firm에 좋은 글이 있어서 번역을 해봤습니다. HCD(Human-centered design)이 단지 사람만을 위한 원리는 아니겠지만, conter에 사람이 아닌 Nature/Earth가 자리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systems thinking(시스템 사고)를 통해 관련된 몇 가지 factor가 아니라 대상이 속한 전체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겠죠. 쉽게 말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것이 시스템 사고의 핵심입니다.

> Wiki : Systems thinking 
> 시스템 사고

늘 그렇지만 원문을 직접 보고 사람들의 댓글도 보면 더 좋습니다.

> 원문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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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of human centered design

firmfollowsform.com / June 4th, 2013 / view original

 

Throughout my career, and especially as a designer at IDEO, I’ve been a passionate believer of the value of placing people first, of designing from an end–user perspective. I’ve seen first hand the potential for how Human-Centered-Design (HCD) can transform careers, organisations,  industries and people’s lives. However, lately an idea has started to gnaw at me. Freshly back from the Skoll World Forum and hearing so much about social entrepreneurship, where I met and heard from some of the world’s most progressive thinkers and doers. These people are transforming the lives of humans everywhere – tackling prescient issues including poverty, inequality, corruption, and genocide. At Skoll and other similar events, the needs of people become apparently obvious. The delegates and speakers alike are passionate and knowledgeable about the progress of man (or lack thereof) in creating a more equal world. Perhaps it was the abundance of rhetoric about human needs that made me ask the question ‘But what about the rights of nature, other creatures, or of the planet itself?’

내 경력을 통틀어서, 특별히 IDEO의 디자이너로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end-user의 관점에서 디자인하는 것에 대한 열정적인 지지자였습니다. 나는 HCD가 어떻게 경력, 조직, 산업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킬수 있는지에 대한 잠재력을 직접 봐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어떤 아이디어가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Skoll World Forum에 참석해서 만난 가장 진보적인 사상가와 행동가들로부터 소셜 비즈니스의 정신에 대해 수 없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 가난, 불평등, 부패와 인종청소 등의 문제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Skoll 그리고 그와 비슷한 행사들에서 사람들의 요구는 보다 구체화되었습니다. 그곳의 대표들과 발표자들은 보다 평등한 세계를 만들려는 인류의 노력에 대해서 열정을 갖고 있고 많은 연구를 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그것들은 사람들의 욕구/요구/문제에 대한 수많은 미사여구 – 내가 ‘그럼 자연과 다른 생물들, 그리고 이 지구 자체의 권리에 대해서는?’이라고 질문하게 만드는 – 였을까요?

HCD has been a breakthrough for our industry – it’s repositioned design as a tool to help transform product development by ensuring customer’s needs are met and also by helping to uncover people’s latent needs (those not surfaced by traditional focus groups for instance). We are taught to think about the world in three lenses as designers: desirability – what people want, feasibility – the capabilities of a firm, and viability – its financial health. We are taught that we should start from the perspective of people’s needs first: desirability. This way of thinking, however, is selfish. It focuses on the needs of humans, but in doing so, ignores the needs of the rest of the 8.7M species that share planet Earth. What would be desirable, feasible, or viable if we took the perspective of planet Earth and ran it through the same venn diagram?

HCD는 우리 산업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이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사람들의 요즘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찾아냄으로서(기존의 Focus group으로는 밝혀내지 못한) 제품의 개발을 변화시키도록 돕는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3가지 렌즈를 가지고 생각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 desirability(호감도) –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feasibility(구현가능성) – 회사의 능력, 그리고 viability(실행가능성) – 재정건전성. 우리는 사람들의 요구라는 관점에서부터 시작하도록 배웠습니다 : desirability. 그런 방식의 사고는, 어쨌든, 이기적입니다. 인간의 요구에 초점을 두었지만, 지구를 공유하는 8.7백만종의 나머지 생물들의 요구는 구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구적인 관점을 가지고 같은 벤다이어그램에서 생각한다면, 무엇이 바람직하고 구현 가능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Astronomy fell into a similar trap many years ago – we believed we were the centre of the universe and that everything revolved around us, and we held on to this belief for almost two millennia. Although others made the same radical suggestion (Aristarchus of Samos in 250BCE), it wasn’t until the 15th century that the astronomer Georg Peurbach and his student Johannes Regiomontanus started to question the accuracy of Aristotlean and Ptolemic physics. These theories were further built upon by Copernicus who was the first to create a model which placed the sun in the centre of the universe. But it took Galileo’s observations of the heavenly bodies in 1610 to spot that Jupiter had moons that rotated around it, and therefore, disobeyed the rules of Aristotelean astronomy – proof finally. So radical was his idea that he was locked up and threatened with excommunication. But Galileo’s idea took hold of course, and we no longer consider ourselves the centre of the universe. Imagine how much more progress we might have made as a species if we had listened to Aristarchus 2000 years earlier? Following this dogma caused lots of problems in the development of science: people believed that the physics of the heavens were different to those on Earth; scientific laws were rationalised based on this; Earth was not even recognised as a Planet until Copernicus’ time.

 천문학은 오래 전에 비슷한 함정에 빠졌습니다 –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믿음을 거의 2천년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누군가 급진적인 주장을 했지만(기원전 250년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쿠스 – 지동설을 주장함), Georg Peurbach와 그의 학생 Johannes Regiomontanus가 아리스토텔리스와 플라톤의 물리 이론에 의문을 제기할 때까지도 유지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론들은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에 태양을 최초로 배치한 이론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1610년 갈릴레오가 목성의 달이 목성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발견을 하였고,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은 최종적으로 뒤집혔습니다. 너무 급진적인 아이디어라서 그는 감금되고 파문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주장은 강력했고, 이제 우리는 누구도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This moment in history was pivotal: it shook up religions, scientific thought, and philosophy. The idea that we were not the centre of the known existence meant placing something far more important as the centre of our focus and that was a desire for fundamental truths in the measurable data and proof of science.

그 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 종교들과 과학적 방법론, 그리고 철학이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리가 알려진 존재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우리 관심의 초점을 더 중요한 어떤 것에 맞추도록 했고, 측정 가능한 데이타와 과학적 증명을 통한 근본적인 진실에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We are at a similarly epochraphal moment in our evolution: although we don’t believe earth is the centre of the universe, we still behave as if humans are the most important species alive today.

우리는 우리의 진화에서 명확한 근거가 불확실한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 비록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믿지만, 여전히 인류가 현재 살아있는 모든 종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The Era of Man

We live, as geologists have stated, in the era of the Anthopocene – man has altered the Earth so dramatically that we have defined it by our actions. Just 10,000 years ago, humans and their livestock took up just 1% of the biomass on Earth. Guess what that percentage is today? A staggering 98%. OK, most of that is cattle, but still, within a nanosecond in Earth’s history we have transformed our home. With this new era we need a new approach to design that takes into consideration what is important for the natural systems we depend upon and take for granted. Perhaps we should call it Holistic Design: designing with a frame that includes the natural and human systems in combination to ensure we consider the bigger picture.

우리는 지질학자들이 말한 인류세(Anthropocene)를 살고 있습니다 – 인류는 우리의 행동에 의해 지구를 드라마틱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10,000년 전에는 인류와 그들의 가축이 지구 생물자원의 1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현재는 어떨까요? 거의 9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 그 중 대부부은 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지구 역사에서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고향을 바꿔놨습니다. 이런 시대의 디자인에서는 우리가 의지하고 당연시하는 자연 생태계에서 뭐가 중요한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Of course we want a human-centered world, we’re a selfish species after all, but we have to find ways to evaluate what is collectively good for us. The problem is we’re not that great at agreeing collectively on what to do next, and even when we do we’re terrible at sticking to our collective word. Just take the Kyoto agreement, or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for instance. So far our best attempts to create mass adherence reside in millennia old institutions: religion. Seriously: nothing else comes close in terms of getting us to en-masse comply (or not) to a set of rules which keep us in check.

물론 우리는 이기적인 종이기에 사람이 중심이 된 세계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전체적으로 더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평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할 지 전체적으로 동의를 이루는데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고, 심지어 우리가 그런 합의를 했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각 단체의 단어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코 의정서나 Millennium Development Goals(UN이 새로운 세기를 맞아 2000년에 설정한 8개의 국제적인 목표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중이 따르는 기준을 만들려고 한 최신의 시도들은 종교라는 오래된 제도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따르고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규칙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The problem and the opportunity of being human-centred

The challenge that we face is that we will only make changes when we perceive a real threat to our way of life, our existence. Politicians generally only propose changes when they see a threat to the popular opinion of their governance and individuals only make changes when it really affects their pay check or reputation.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우리가 삶의 방식과 존재에 대한 진정한 위협을 인식할 때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정부의 인기가 위협받게 되거나 그들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 할 때에만 변화를 제안합니다.

What does this mean for Design?

Design is a very insecure discipline – it’s undergone many transformations over the last 200 years from its roots in John Ruskin’s world of craft, to the industrial revolution, the Bauhaus, to its mass diversification into multiple separate ‘schools’: fashion, automotive, product, service, brand, even business. I believe it’s time for design to take the next step and lead the way to Holistc Design. That means finding an approach that, like Design Thinking has done, transcends discipline, encourages collaboration across those disciplines, considers the whole system rather than just its parts, and takes a discovery driven approach to creating new solutions.

디자인은 매우 불안정한 분야입니다 – 존 러스킨의 공예로부터 산업혁명, 바우하우스, 다양한 ‘학교들'(패션, 자동차, 제품, 서비스, 브랜드, 심지어 비즈니스까지)에 걸쳐 200년 이상의 시간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나는 디자인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서 Holistic design(전체적 디자인)으로 이끌어야 하는 시기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Design Thinking이 그랬듯이 분야를 초월하여 협력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접근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What can we do about it?

Being a designer myself, I’m optimistic that we can reverse our impact and use our collective intelligence to improve things for the better. Here’s a few ideas for how we might make an impact, both individually and as a species:

디자이너로서 나는 우리가 지구에 대한 우리의 영향을 되돌리고, 우리의 집단 지성을 세상을 발전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개인적으로 그리고 인류로서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1. Be curious and question the dogma 

    Find out about the issues that we face. A great place to start is by looking at the big picture – the Anthopocene.org site has a fascinating map of some of the world’s most at threat locations or check out the Long Now Foundation’s collection of TED Extinction videos. But even more important perhaps is to find out how the issues affect you locally – how is the ecology changing, the land-use, bio-diversity? Where does your waste go? Start asking questions and you’ll find more questions appear rapidly.

    우리가 직면한 이슈들을 찾아보세요. 큰 그림을 보는 것은 좋은 시작이 됩니다 – Anthopocene.org는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지역들에 대한 흥미로운 맵을 제공하고 있으며, Long Now Foundation의 TED Video 모음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이슈들이 어떻게 당신에게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 기후변화나 생물 다양성등에 대해서요. 당신의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질문하기를 시작하면 당신을 더 많은 질문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2. Learn about the steps we can take as individuals

    Learning about the issues we face can be overwhelming, but the good news is if we all become more aware, we’re taking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Try learning about bottled water. 

    우리가 직면한 이슈들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맞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수병에 대해서 배워보세요.

  3. Spread the word: 

    Peer pressure can be an incredible force of change. Ask your friends and colleagues these questions. Share what you learn and look for interest groups. Here’s a great one: The Restart Project organises communities of self-repair around London through Restart Parties, where volunteers help others in trying to fix their electronic products. Or find one locally – here’s a great list.

    비슷한 사람들로부터 받는 압력(peer pressure)는 변화를 위한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그런 질문들을 던져보세요. 당신이 배운 것을 공유하고 관련 단체를 찾아보세요. 

  4. Change behaviour:

    Start with small changes and see how you can make a difference. Compete with friends to see who can reduce their carbon footprint, or learn how to reduce your business’ footprint,this service provides a toolkit to help you do that.

    작은 변화를 통해 어떻게 당신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친구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경쟁한다든지, 당신의 비즈니스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보세요. >도움이 되는 도구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5. Lobby governments and companies to make changes: 

    People can change laws. We allow the status quo to be by not resisting it. Non-violent resistance enabled India’s independence. One of the most inspiring things I read lately was about embedding the rights of nature in our legal code.

    사람들은 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항하지 않음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용인합니다. 비폭력저항은 인도의 독릭을 이뤄냈습니다. 최근에 읽은 가장 멋진 글은 우리의 법에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6. Create new solutions that reverse human impact.

    Businesses are one of the most effective mechanisms for creating change: there are two clear ways of doing that: serving people’s needs in more sustainable ways, for example cradle to cradle movement, the ‘circular economy’ movement such as the Ellen MacArthur Foundation’s work, platforms such as Sustainia or by directly improving a core planetary issue that creates value as a by-product, e.g. the X-Prize competitions, Ecotourism: responsibletravel.com.

    비즈니스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효율적인 매카니즘 중 하나입니다 : 거기에는 2가지 명확한 방법이 있습니다. 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수요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또는 직접적으로 부가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지구적인 이슈를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X-Prize, 생태여행 같은 것이 있습니다.

These are just a few thought starters towards thinking about a new approach to design. How do you approach problem solving? Does your approach always take a human-centric approach or does it embrace a more systemic view? How do the needs of the planet fit into the way you do business or just your everyday life? I’d love to hear from you.

새로운 디자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입니까? 당신의 접근은 언제나 인간 중심적입니까 아니면 더 전체적인 관점을 포괄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행성 차원의 요구들을 당신의 비즈니스와 일상의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그 답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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